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1981년에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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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0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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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따 1990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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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 살아있는 역사교육장이 되었다.
레포트/공학기술
설명
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1981년에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이후
다.
구서울구치소 사적지정은 1건에 불과하지만 7년 전 17동을 지정한 事例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이듬해 84년에는 일제의 황관을 상징한다는 “중앙청 돔은 꼭 떼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1984년 7월 26일자 중앙일보). 다시 8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Japan벽화가 있는데 당국은 내용도 모른채 …(drop)
순서
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 살아있는 역사교육장이 되었다. culture재 위원회는 ‘구서울구치소는 당초 culture재 지정 의도대로 건물 개개의 가치보다는 민족수난의 상징적 의미로 culture재를 지정 보존하는데 그 뜻이 있으므로 culture재의 추가지정은 곤란하다’는 회신을 보냈다. 철거시비는 박물관 이전에 가려 ‘한편 일각에서는 완전히 철거해야한다는 opinion(의견)이 일고있다’는 정도의 스트레이트 기사로 언급되었다. 1993년 8월 9일 철거결정 이후 각계에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다. 1990년 4... , 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1981년에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이후공학기술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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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 살아있는 history교육장이 되었다.
3-2.舊조선총독부, 국립중앙박물관 철거시비 10년의 결말
오는 1995년 8월 15일, 광복50주년을 맞아 舊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공법으로 전면철거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후 몇순서 비슷한 단체로부터 민원이 접수되었고 똑같은 회신이 수차 발송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철거시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다아 1990년 4월 20일 접수되었다.
광복 후 죽 중앙청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 5월 본격적인 국립박물관 이전사업이 실시되면서 구조선총독부의 모습은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대한독립유공자 유족중앙회 회장 김삼열은 구서울구치소 철거건물 복원 추가지정 및 성역화를 요청해왔다. 찬란한 민족culture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어두운 과거의 시간들을 들추어내는 기억의 장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culture인식에 대한 하나의 조심스러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81년에 지정된 건물은 학교, 은행, 역, 병원, 성당 등 정치적 색깔이 완전 배제된 것들임에 비해 구서울구치소는 법무부에서 민감하게 reaction(반응)하리만큼 정치적인 장소였다.